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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희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의 무녀 예능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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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희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의 무녀 예능보유자.

 

 

황남희

 

 분야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의 무녀 예능보유자.

 

내용


황남희(黃南姬, 여)는 1935년에 충남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6세에 부친이 별세하여 집안 사정으로 인근의 구룡면으로 이사하였다. 1950년 3월에 구룡초등학교를 졸업한 황남희는 한국전쟁 중에 서울로 올라가 군속으로 재봉 일을 하다가, 1955년 즈음에 신병을 앓았다. 황남희는 특별히 내림굿을 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벼락대신이 내려서 한 번에 ‘말문’이 트였다. 26세에 혼인을 하였으나 자식이 없어서 33세에 남편과 헤어진 황남희는 그 이후로 여러 사찰을 유람하면서 사람들의 신수(身數)나 산지리도 보아 주면서 근근이 생활하며 지냈다. 정식으로 법당을 차리고 무업에 종사한 것은 경기도 안성에 살던 43세 때의 일이다.
그녀의 외가는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이다. 어려서 외갓집에 수시로 출입하면서 은산별신제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구룡면 논티의 꽃받기 행사를 구경한 적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다. 그 후에도 외갓집 마을에서 벌어지는 은산별신제를 간혹 보아왔다. 언젠가는 은산별신제 예능보유자였던 차진용의 소개로 이어인년 무녀와 함께 은산별신제의 상·하당굿에 두어 번 참여하였다. 그러다가 1986년에 은산으로 아예 거주지를 옮겼다. 이 해 이어인년이 타계하면서 은산별신제의 이수생으로 추천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은산별신제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한시우 무녀와 함께 은산별신제의 굿을 주도하였다. 이 동안에 황남희는 1992년 7월에 은산별신제 조교로 인정되었다.
1995년에 이수자인 한시우가 별세하자 은산별신제의 굿은 황남희가 거의 도맡게 되었다. 이어인년과 그녀의 전수자 최매순, 한시우가 모두 사망하자 은산별신제의 굿은 전수 체계에서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황남희는 1998년 6월에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에 의하여 은산별신제의 굿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현재 전수장학조교인 이일구와 전수생인 김일락 무녀 등이 황남희의 굿 예능을 학습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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