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계만
분야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악사 부문 기능보유자.
내용
채계만(蔡桂萬, 남)은 1915년에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4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진도 보통학교를 졸업한 채계만은 음악은 정규학교 수업과 상관없이 옛 명인들을 통해 습득하며 다양한 국악 활동과 공연을 통해 악사로서의 소양을 쌓았다. 18세 때 진도군 진도읍내에서 채두인에게 장구 장단을 배우고, 22세 때에는 2년간 진도의 채맹인에게 가야금산조 진양조부터 휘모리까지 기초학습을 하였다. 그 뒤 굿 현장에 악사로 참여하면서 꽹과리, 징, 장구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의 전공 악기인 아쟁 역시 따로 배우지 않고 견학하여 자습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39세 때부터 10여 년간 삼성여성국극단, 햇님 등 창극단을 수행하며 아쟁으로 반주음악을 연주하였다. 국극단에서는 국악 연주뿐 아니라 클라리넷도 불렀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는 후진 양성에 힘쓰면서 간간이 굿판에다가 아쟁과 가야금을 연주하는 고인(鼓人)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진도에서 아쟁을 잘 타는 고인이 많지 않아서 아쟁 연주자로서 여러 곳에 초빙되어 다녔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진도국악원 악장으로 있었으며, 1979년 9월 18일 KBS 〈즐거운 인생〉의 최우수상을 고고, 1985년 6월에는 서독 외 유럽 5개국을 순회 공연하는 등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였다. 채계만은 진도의 이름난 무녀들인 박선례, 김석연 등 여러 선굿 명인들을 수행하며 가야금 또는 아쟁을 연주하였다. 1980년 11월 17일에 진도씻김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에는 진도씻김굿 공연 현장에서 아쟁을 연주하였다. 특히 현재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인 박병원을 전수생 시절부터 육성함으로써 진도씻김굿 아쟁 연주의 토대를 다졌다. 채계만의 선조는 원래 신안군 비금면 출신이었으나 8대조인 채걸합이 진도군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진도에서 살게 되었다. 신안에서도 무업을 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채걸합의 두 부인 구씨와 김씨 가운데 김씨가 무계였다는 점은 확인된다. 채계만의 증조부는 진도 군수로부터 오위장(五衛將 : 7品이하)에 준하는 벼슬을 받는 등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쌓기도 하였다. 그 후 현재까지 집안 대대로 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많은 무속인이 배출되었다. 특히 현재 활동 중인 채정례도 채계만과 8촌간이 동일 가계 인물이다. 채계만은 안씨와 결혼하여 2남 2녀를 두었지만 자녀들 중에 무업을 계승한 사람은 없다. 상처한 후 혼자 진도읍내 셋방에서 살다가 2002년 9월 29일 87세가 되던 해에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가 남긴 음반으로는 〈무악 진도씻김굿〉(소리 김대례·이완순, 아쟁 채계만, 피리 김귀봉, 북 강준섭, 장구 박병천)이 있다. 이 음반은 1992년 6월 진도홀에서 녹음되었고 1994년 사운드스페이스/삼성나이세스에서 제작해 출반되었다. |